『돈의 물리학』 – 진짜 돈을 잘 버는 사람은 누구인가?

요즘처럼 시장이 널을 뛰는 시대에 주식에 발을 담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다. “이 종목, 도대체 왜 오르는 걸까? 왜 떨어지는 걸까?”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분산투자가 답이라며 다양한 종목에 조금씩 투자해 봤지만, 주가를 예측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모호한 일이었다. 차트를 보고, 재무제표를 들여다보고, 뉴스도 부지런히 챙겨봤지만, 여전히 ‘예측’은 감각에 가까웠고, 나는 늘 한 발 늦게 따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고민 끝에 서점을 찾았고,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월스트리트의 물리학자들』이었다. 제목부터가 인상적이었다. “물리학자들이 금융을?” 낯설고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느낌이었다. 

 

 

 

돈이 움직이는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다. 책의 부제가 내눈에 와서 꽂혔다.

“물리학자들이 금융을?” 낯설고도 묘하게 설득력 있는 느낌. 사실 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라 자연과학은 익숙하지 않은 세계다.

그래서 처음 책을 펼쳤을 땐 어렵게 느껴지는 용어들과 과학사적인 에피소드들에 좀 겁을 먹기도 했다. 읽는 속도도 더뎠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붙들게 만든 건,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때문이었다. 단순히 공식이나 그래프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를 바꿔보려는 시도. 실패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고, 끊임없이 모델을 바꾸는 ‘과학자적인 태도’야말로 우리가 투자와 마주할 때 필요한 자세라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세상에서 돈을 가장 잘 굴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대부분은 워런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 같은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워렌버핏

 

조지소로스

 

 

그러나 제임스 사이먼스(Jim Simons)의 이름은 아마 처음 듣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경력을 쌓은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수학 이론 ‘첸–사이먼스 공식(Chern–Simons form)’의 공동 발견자이며, 전 세계 과학자들 사이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한다.

제임스 사이먼

 

하지만 사이먼스가 진정 놀라운 이유는 그가 과학자의 길에서 그치지 않고, 투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전설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는 1988년 수학자 제임스 액스와 함께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Renaissance Technologies)’를 설립했고, 대표 펀드인 ‘메달리온 펀드(Medallion Fund)’는 10년 동안 2,478.6%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는 1,710.1%,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연평균 수익률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놀라운 점은 메달리온 펀드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에도 80% 수익을 냈다는 것이다. 시장이 붕괴되던 시기, 다른 펀드들이 큰 손실을 보는 와중에도 이 펀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전통 금융의 상식을 거부한 집단

르네상스는 일반적인 금융회사와 다르다. 사이먼스는 금융 전문가나 월가 출신을 거의 고용하지 않았다. 대신 수학, 통계학, 컴퓨터 과학, 물리학 등 순수 학문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MIT 수학자 이사도어 싱어는 르네상스를 “세계 최고의 과학자 집단”이라고 부르며, 그들의 성공이 바로 이 ‘학문적 배경’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기준 르네상스에는 약 200명이 근무했으며, 그 중 3분의 1이 자연과학전공 박사 학위 소지자다. 그들이 금융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금융이 아닌 시선으로 시장을 본 덕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이먼스는 “기존의 금융 전문가를 쓰지 않은 것이 바로 성공의 열쇠였다”라고 말하며, 실제로 전통적인 투자은행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은 르네상스에서 거의 일하지 않는다.

그는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하려 했고, 다른 금융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에 도전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냈다. 금융업계의 시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성공이었다.

 

 

 

르네상스

 

 

 

『돈의 물리학』 – 실패한 건 모델이 아니라 태도였다

이 이야기로 제임스 웨더올(James Weatherall)의 책 『돈의 물리학』은 시작한다. 이 책은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금융 시장을 바꿔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책에서 웨더올은 “모든 괴짜가 같은 괴짜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단순히 수학 모델이 금융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모델의 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용한 태도가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금융위기의 배경에는 과잉 발달한 파생상품이 있다.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서 파생된 선물, 옵션, CDS 등은 복잡하게 구조화되어 일반인은 물론이고 운용자들도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모델이 금융 시장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점검하거나 갱신하려는 시도 없이 그대로 운용되었다는 점이다.

웨더올은 금융기관과 정부가 여전히 1세대, 2세대 모델에 의존하며, 3세대, 4세대적 모델—즉 과학자처럼 끊임없이 실험하고 갱신하려는 태도—을 받아들이지 못한 점을 더 큰 문제로 본다. 과학자들은 모델이 깨지면 고치고, 실패하면 더 나은 대안을 찾는다. 하지만 금융계는 한 번 구축된 모델을 신성시하며, 그것이 붕괴하기 전까지 그대로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어떻게 시장을 바꿨나?

책은 금융의 역사를 따라가며 루이 바슐리에, 블랙-숄즈 모델, 전후 냉전기 정부 연구소 출신 과학자들의 금융 진출, 그리고 지진 예측 모델을 금융시장 붕괴 예측에 활용한 사례 등 다양한 과학자들의 금융 개입을 보여준다.

이들은 단지 새로운 수학 공식을 만들려 한 것이 아니다. ‘시장’을 하나의 실험 가능한 물리계처럼 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반복적으로 검증했다. 사이먼스와 르네상스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가격 예측이 아니라, 패턴 인식과 반복성 탐색에 집중했고, 기존의 감이나 직관에 의존하던 금융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책에서는 양자역학 개념을 활용해 더 정밀한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만드는 실험도 소개된다. 이는 단지 금융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적 사고방식이 경제 전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투자도 결국 과학자와 같은 태도

『돈의 물리학』은 투자가 더 이상 ‘감과 경험’만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이러한 불확실성과 비선형성 속에서 정확히 틀리고, 실패 속에서 배우는 과학적 태도야말로 우리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되어야 한다.

사이먼스는 자신이 이룬 성공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을 예측했다. 그래서 돈을 벌었다.”

그가 한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 뒤에 ‘끊임없이 실패를 계산한 사람’으로서의 냉정한 과학자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금융을 바꾼 또 다른 사례 – 딥시크와 량원펑의 퀀트 실험

짐 사이먼스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물리학과 수학 중심의 정밀한 모델로 금융을 혁신했다면, 오늘날에는 또 다른 종류의 과학자들이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량원펑(Yang Yuen Peng)이다.

량원펑은 1985년생으로 , 2025년 현재 만 40세인 그는 중국 출신의 인공지능(AI) 연구자이자 언어 모델 딥시크(DeepSeek)의 공동 개발자이다. 그는 자연어처리(NLP) 기술의 선두주자 중 한 명으로, 단순히 숫자와 수식이 아닌 ‘언어’와 ‘의미’를 읽는 기술을 금융 시장에 도입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퀀트펀드 ‘플라이어(Flyer One Capital)’를 설립했다. 그가 설립한 플라이어퀀트펀드(High-Flyer Quant Fund, 중국명 幻方)는 2015년 설립 이후 인공지능(AI)과 딥러닝 기반의 퀀트 투자 전략을 통해 중국 내 최대 규모의 퀀트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다.
주요 수익 및 성과는 다음과 같다.

  • 2016년 운용 자산 규모는 약 10억 위안(약 2,000억 원)에서 2019년 100억 위안(약 2조 원), 2021년에는 1,000억 위안(약 20조 원)으로 약 100배 성장했다.
  • 하이플라이어는 2021년 기준 중국 4대 퀀트 헤지펀드로 꼽히며, AI와 GPU를 활용한 알고리즘 트레이딩으로 높은 성과를 기록했다

플라이어는 기존의 퀀트펀드들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사이먼스가 가격의 수학적 패턴을 탐지하고 그것을 반복적인 신호로 포착했다면, 량원펑은 AI가 실시간으로 방대한 양의 뉴스, 소셜미디어, 보고서, 전자공시 등을 읽고 해석해, 그 의미 흐름이 시장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를 예측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즉, 플라이어는 수학 공식을 넘어, ‘언어의 세계’를 분석하는 새로운 차원의 퀀트 실험이다.

이는 시장의 미세한 심리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투자에 반영하려는 시도이며, 기존 퀀트 모델이 놓치기 쉬운 ‘비정형 데이터’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딥러닝 기반의 언어모델은 뉴스에 담긴 ‘감정’이나 ‘기대’, ‘불확실성’까지도 수치화해 투자 전략에 반영할 수 있게 한다.

양원펑의 접근은 사이먼스의 유산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기술과 데이터 환경을 반영한 ‘4세대 퀀트’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이 금융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며, 그 방법론은 시대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숫자에서 패턴으로, 패턴에서 의미로.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하나의 공통된 신념으로 수렴된다.

 

주식 투자에 처음 발을 들일 땐 단순했다. 싼 가격에 사서 비싸게 팔면 된다고 생각했고, 뉴스나 전문가 말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시장은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시스템이고, 그 안에선 단순한 공식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돈의 물리학』을 읽으면서 내가 물리학을 이해하고 과학자가 될 수없음은 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금융 시장을 진지하게 이해하려면 단순한 직감이나 조언이 아니라, 과학자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설명하려고 수많은 실패를 거치며 더 나은 모델을 만들어왔듯이, 진짜 투자도 마찬가지다. 시장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함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책 속에서 만난 과학자들은 시장을 단순히 돈이 오가는 공간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패턴과 원리가 존재하는 ‘현상계’로 바라봤다. 그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델이 틀렸을 때 좌절하기보단, 그 실패에서 힌트를 얻어 다음 모델로 나아갔다. 투자도 결국 그런 길일 것이다.

결국 진짜 투자의 시작은 돈을 빨리 버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의 복잡함 속에서도 설명하려는 용기를 잃지 않는 마음가짐, 즉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더 나은 해석을 시도하는 과학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게 나에게 『돈의 물리학』이 알려준 가장 명확한 메시지다. 그리고 지금, 그 태도로 다시 시장을 바라보려고 한다.